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𝗕𝗲𝗰𝗼𝗺𝗶𝗻𝗴 𝗘𝗺𝗯𝗲𝗹𝗹𝗶𝘀𝗵𝗺𝗲𝗻𝘁𝘀 : 기록이 장식이 될 때
2024. 10. 12. Sat. - 12. 15. Sun.
박인성은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MZ세대이다. 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우주의 만물이 물질(atom)에서 비물질(bit)로 변화하는 역동적인 사회의 경계에 놓여 있는 예술가이다. 과거의 보수적 안정과 미래의 진보적 혁신이 뒤엉킨 카오스의 시기에는 새로운 기회의 사잇길들이 발생한다. 박인성은 이러한 기회의 시대에 자신만의 새로운 길들을 찾아가고 있다.
니세포르 니엡스(Nicephore Niepce)가 1826년에 찍은 세계 최초의 영구적 사진인 <르 그라의 집 창가에서 본 조망 / Point de vue du gras>은 약 8시간의 노광이 필요하였다. 이후 사진술의 발달로 빛의 노출시간은 에드워드 마이브릿지(Eadweard Muybridge)의 <움직이는 말 / The horse in motion> 사진에서는 25/1초까지 줄어들며 정에서 동의 피사체를 쉽게 촬영할 수 있게 되고 1초에 24프레임의 시네마 필름도 탄생하게 되었다. 즉 사진 작업은 빛과 시간에 의한 과정의 산물이며 현실의 재현으로부터 출발한다.
박인성 작가는 시간이라는 4차원을 2차원의 평면에 압축하기 위해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인 필름을 콜라주(Collage)하여 중첩 효과를 창출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그는 투명과 불투명, 모호함과 명확함, 정지와 움직임을 서로 연동, 진동시키며 현실과 가상 사이에 주체적 상상의 영역을 확보, 확장한다. 필름은 발광체, 반사체도 아닌 투과체이며 이들 모두를 담을 수 있는 양가적 존재이기에 그의 의도는 더욱 쉽게 증폭된다.
백남준은 1973년 영상작업 <글로벌 그루브 / Global groove>에서 처음으로 타임 콜라주(Time collage)를 시도하였다. 과거 피카소나 브라크가 창출했었던 콜라주 기법은 부(部分)의 이미지들을 모아 주(全體)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머물렀지만, 백남준은 주(主)의 이미지들을 모아 또 다른 확장적 주(主)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는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치 않고 서로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 더욱 이상적인 연대와 합일의 대동(大同) 미학을 창출함을 의미한다.
박인성 또한, 자신의 작품에서 각각 다른 정체성을 가진 레이어(次元)들의 중첩을 통해 과정의 시간성을 압축함으로써 작게나마 시간의 깊이감과 함께 대동의 미학을 창출해 낸다. 이는 단색화의 연속적 중첩과도 다르며 타임 콜라주의 불연속적 중첩과도 다소 다른 새로운 관계의 위치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그는 대부분 평면작업에 필름이라는 매체의 흔적을 조금씩 남기고 드러냄으로써 필연적인 현실성과 우연적인 자의성을 교묘히 공존시키며 둘 사이의 진동을 증폭시킨다. 그의 입체작업 또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비의도적으로 구겨진 오브제와 의도적으로 구조된 투명 큐브의 화학적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시공간적 콜라주 작품을 창출한다. 이러한 입체작업이 놓이는 목제 받침대 또한, 기능만을 위한 조연이 아닌 당당히 자기 시각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시공간 콜라주의 또 다른 주연으로 등장한다.
이원론적인 모더니즘, 해체론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안으로 유불선의 합일, 나아가 동서양 사상의 합일 제안했던 동학사상이 우리에게 제안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해월(海月) 최시영은 “무위이화(無爲而化)는 사람이 만물과 더불어 천도천리에 순응하는 우주만유의 참된 모습”이라고 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이 하나의 시천주(侍天主)로서 운행되는 우주의 주체이고 또한, 여기에는 유기체가 아닌 무기체인 사물도 포함된다. 이는 동식물은 물론 생명이 없는 사물마저도 우주의 주체로서 공경, 존중되는 ‘경물사상’(敬物事狀)으로 양자역학에서 이야기하는 만물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됨으로써 모두가 부분이자 전체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하이데거의 현상학 이후 서양 철학은 그 한계를 인식하며 동양사상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많은 예술가도 이를 실천하였고 아마도 백남준은 가장 성공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사상, 철학을 수평적으로 합일시킨 현대미술 작가였다. 이후에도 많은 예술가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며 실천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 박인성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둘 다를 중의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예술가이다. 그는 사회 변화적 혼돈을 나름 자신만의 태도로 적응, 소화하며 독창적인 시공의 콜라주 기법을 통해 동서양 미학의 합일과 대동의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서 대동의 미학이라고 함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미지 하나하나의 정체성을 조화롭게 합일시키려는 신(新) 관계의 미학 창출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박인성은 평면, 입체 설치, 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조화롭게 넘나들며 인간의 존재적 자아 성찰과 사회 참여적 공공 예술의 경계를 융합시키며 새로운 중의적 예술세계를 창출해 내고 있다.
- 서진석(부산시립미술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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