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ㆍSIC : 시각의 선율

2024. 03. 08. Fri. - 05. 19. Sun.




    윤선갤러리는 2024년 3월 8일부터 4월 28일까지 현대미술가 이용백(李庸白, 1966-)ㆍ김현식(金玄植, 1965-)ㆍ임현희(1984-)ㆍ박인성(朴寅成, 1984-)의 전시회 <VIㆍSIC>展을 개최한다. ‘VIㆍSIC’은 비주얼 아트(visual art)와 음악(music)의 합성어이다.


    음악은 대필적 예술이라고 한다. 미술은 자필적 예술이다. 대필적 예술은 복사나 재연(re-act)이 가능하다. 모차르트의 곡을 살리에리가 연주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술은 복사나 재연해서는 안 된다. 피카소가 마티스의 스타일을 도용하거나 절취한다면 더는 피카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은 일회성이라는 무기를 갖는다.

 

    음악은 가장 완벽한 추상적 형식의 예술이다. 그림보다 추상적이고 시보다 진실하다. 영혼에 직접 전달되기 때문이다. 음악을 뜻하는 ‘music’의 어원은 숲의 정령(精靈)을 뜻하는 ‘muse’이다. 숲의 정령은 영감을 직접 전해준다. 갓난아이도 모차르트의 선율에 미소를 머금고 베토벤 음악을 틀면 인생의 무거움을 직감해서 울음을 터트린다. 정령(精靈), 그것은 정신과 영혼을 바로 전달한다는 뜻이다. 아무 여과가 없다. 음악은 완벽히 추상적인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영혼에 직접 전달되어 가장 구체적인 느낌을 주는 예술이다.

 

    시각 예술을 뜻하는 ‘visual art’는 상황이 다르다. 인류는 최초에 실재와 가상(이미지)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성으로 외재, 혹은 탈존(ek-sist, ex-sist)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내재했기에(in-sist) 자기 존재를 고집스럽게 주장할 뿐이었다. 마치, 굴조개나 쥐며느리처럼 자연과 하나 되어 자기를 주장했다. 이를 이미지의 마술성(魔術性, magical nature)이라고 한다. 이미지를 비판하기 위해서 사람은 문자를 개발했다. 문자는 이성을 낳고, 드디어 사람을 탈존하게 했다. 문제는 탈존하여 이성을 활용하여 과학을 만들고, 과학으로 이미지를 다시 만들었다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의 시각은 직접적 감동의 전달이 될 수 없고 학습이자 맥락이며, 훈련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그것의 형태가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용의 여의주를 심볼라이즈했기에 그 이미지가 갖는 상징적 마술성에 갇히는 것이다.

 

    김현식ㆍ이용백ㆍ박인성ㆍ임현희 작가의 세계는 시각 예술이라는 맥락주의와 상징을 뛰어넘어 마치 음악처럼 직접적 감동을 주는 작가이기에 음악과 같은 시각 예술이라는 의미로 VIㆍSIC로 명명하고자 한다. 네 작가의 미술, 즉 비주얼아트가 음악(뮤직)처럼 직접적으로 공명(resonance)을 울리는 것은 그들의 심시정신(審時情神)과 관련되며 진솔하고 거짓 없는 노동을 존중하며, 진리를 약자[民衆]의 휴척(休戚) 여부로 판단하여 작업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가로폭 2.4M, 세로 2M 이상의 대형 설치 작품을 포함해 영상, 캔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며 4월 28일까지 윤선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용백의 신작 <블루스크린> 연작은 팬데믹 시기, 서구사회의 정보(여론) 은폐와 조작과 그에 따른 글로벌 시민의 동요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파란 수건은 숭고를 뜻하기도 하거니와 우울과 관련한다. 경계(警戒, alerting)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브 클랭의 블루를 레퍼런스로 하여 상징형식으로서의 장엄한 조각을 완성했다. 이러한 작품 레퍼런스는 진리 개념을 은유한다. 진리는 지독히도 드러나기 어렵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회의적 논의를 찬연한 블루로 대비시켜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공명을 발산한다.

 

    김현식 작가는 ‘현(玄)’의 세계를 다룬다. 유가의 상식이 통용되었던 한 제국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상식 저편의 세계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위ㆍ진 시대의 풍도(風度)는 현(玄)에 있다. 현(玄)은 허실상생(虛實相生)을 긍정하는 마인드를 가리키는 추상 개념이다. 서구 사유에 의하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유에서 허(虛)ㆍ공(空)ㆍ무(無)는 존재의 부재가 아니다. 존재를 산생(産生)시키는 근원이다. 빛은 동굴에서 본질을 드러내며, 남성성은 여자와 단둘이 암흑에 있을 때 극화된다. 김현식은 허(虛)ㆍ공(空)ㆍ무(無)의 존재성을 시각 예술로 드러낸 전 세계 최초의 화가이다.

 

    임현희 작가는 먹물을 캔버스에 흘려 중력과 물질의 흐름을 보며, 이를 (작가의) 의지와 때로는 충돌하고 투쟁하며, 때로는 화해하고 양보하여 전적으로 예술가의 의도도 아닌, 그렇다고 전적으로 중력(자연 원리, 神)의 전권도 아닌 회화를 완성한다. 우리의 인생은 의지와 예정(운명)의 변증법이듯이, 자연 원리는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듯이, 임현희의 회화 속에는 작가의 의지와 자연 원리(신)의 손길이 협연한다.

 

    박인성 작가는 사진과 회화, 조각의 특성을 캔버스에 중첩한다. 사진은 이성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만든 문명이며, 회화는 저 세계의 상징이며, 조각은 본능의 제스처를 상징한다. 박인성은 작품에 사람의 역사와 제스처를 써넣는다. 예전에 한 전설적인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 1933-2005)은 태도가 형식이 된다고 했지만, 박인성 작가는 사유가 곧 형식이며, 현대미술은 물질적 시(material poetry)라는 전제에서 예술적 서사를 전개한다.

 




• Yoonsun Gallery +82 53-766-8278
• 92-2, Yonghak-ro, Suseong-gu, Daegu, Korea



VIㆍSIC : 시각의 선율

2024. 03. 08. Fri. - 05. 19. Sun.





    윤선갤러리는 2024년 3월 8일부터 4월 28일까지 현대미술가 이용백(李庸白, 1966-)ㆍ김현식(金玄植, 1965-)ㆍ임현희(1984-)ㆍ박인성(朴寅成, 1984-)의 전시회 <VIㆍSIC>展을 개최한다. ‘VIㆍSIC’은 비주얼 아트(visual art)와 음악(music)의 합성어이다.


    음악은 대필적 예술이라고 한다. 미술은 자필적 예술이다. 대필적 예술은 복사나 재연(re-act)이 가능하다. 모차르트의 곡을 살리에리가 연주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술은 복사나 재연해서는 안 된다. 피카소가 마티스의 스타일을 도용하거나 절취한다면 더는 피카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은 일회성이라는 무기를 갖는다.

 

    음악은 가장 완벽한 추상적 형식의 예술이다. 그림보다 추상적이고 시보다 진실하다. 영혼에 직접 전달되기 때문이다. 음악을 뜻하는 ‘music’의 어원은 숲의 정령(精靈)을 뜻하는 ‘muse’이다. 숲의 정령은 영감을 직접 전해준다. 갓난아이도 모차르트의 선율에 미소를 머금고 베토벤 음악을 틀면 인생의 무거움을 직감해서 울음을 터트린다. 정령(精靈), 그것은 정신과 영혼을 바로 전달한다는 뜻이다. 아무 여과가 없다. 음악은 완벽히 추상적인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영혼에 직접 전달되어 가장 구체적인 느낌을 주는 예술이다.

 

    시각 예술을 뜻하는 ‘visual art’는 상황이 다르다. 인류는 최초에 실재와 가상(이미지)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성으로 외재, 혹은 탈존(ek-sist, ex-sist)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내재했기에(in-sist) 자기 존재를 고집스럽게 주장할 뿐이었다. 마치, 굴조개나 쥐며느리처럼 자연과 하나 되어 자기를 주장했다. 이를 이미지의 마술성(魔術性, magical nature)이라고 한다. 이미지를 비판하기 위해서 사람은 문자를 개발했다. 문자는 이성을 낳고, 드디어 사람을 탈존하게 했다. 문제는 탈존하여 이성을 활용하여 과학을 만들고, 과학으로 이미지를 다시 만들었다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의 시각은 직접적 감동의 전달이 될 수 없고 학습이자 맥락이며, 훈련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그것의 형태가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용의 여의주를 심볼라이즈했기에 그 이미지가 갖는 상징적 마술성에 갇히는 것이다.

 

    김현식ㆍ이용백ㆍ박인성ㆍ임현희 작가의 세계는 시각 예술이라는 맥락주의와 상징을 뛰어넘어 마치 음악처럼 직접적 감동을 주는 작가이기에 음악과 같은 시각 예술이라는 의미로 VIㆍSIC로 명명하고자 한다. 네 작가의 미술, 즉 비주얼아트가 음악(뮤직)처럼 직접적으로 공명(resonance)을 울리는 것은 그들의 심시정신(審時情神)과 관련되며 진솔하고 거짓 없는 노동을 존중하며, 진리를 약자[民衆]의 휴척(休戚) 여부로 판단하여 작업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가로폭 2.4M, 세로 2M 이상의 대형 설치 작품을 포함해 영상, 캔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며 4월 28일까지 윤선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용백의 신작 <블루스크린> 연작은 팬데믹 시기, 서구사회의 정보(여론) 은폐와 조작과 그에 따른 글로벌 시민의 동요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파란 수건은 숭고를 뜻하기도 하거니와 우울과 관련한다. 경계(警戒, alerting)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브 클랭의 블루를 레퍼런스로 하여 상징형식으로서의 장엄한 조각을 완성했다. 이러한 작품 레퍼런스는 진리 개념을 은유한다. 진리는 지독히도 드러나기 어렵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회의적 논의를 찬연한 블루로 대비시켜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공명을 발산한다.

 

    김현식 작가는 ‘현(玄)’의 세계를 다룬다. 유가의 상식이 통용되었던 한 제국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상식 저편의 세계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위ㆍ진 시대의 풍도(風度)는 현(玄)에 있다. 현(玄)은 허실상생(虛實相生)을 긍정하는 마인드를 가리키는 추상 개념이다. 서구 사유에 의하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유에서 허(虛)ㆍ공(空)ㆍ무(無)는 존재의 부재가 아니다. 존재를 산생(産生)시키는 근원이다. 빛은 동굴에서 본질을 드러내며, 남성성은 여자와 단둘이 암흑에 있을 때 극화된다. 김현식은 허(虛)ㆍ공(空)ㆍ무(無)의 존재성을 시각 예술로 드러낸 전 세계 최초의 화가이다.

 

    임현희 작가는 먹물을 캔버스에 흘려 중력과 물질의 흐름을 보며, 이를 (작가의) 의지와 때로는 충돌하고 투쟁하며, 때로는 화해하고 양보하여 전적으로 예술가의 의도도 아닌, 그렇다고 전적으로 중력(자연 원리, 神)의 전권도 아닌 회화를 완성한다. 우리의 인생은 의지와 예정(운명)의 변증법이듯이, 자연 원리는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듯이, 임현희의 회화 속에는 작가의 의지와 자연 원리(신)의 손길이 협연한다.

 

    박인성 작가는 사진과 회화, 조각의 특성을 캔버스에 중첩한다. 사진은 이성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만든 문명이며, 회화는 저 세계의 상징이며, 조각은 본능의 제스처를 상징한다. 박인성은 작품에 사람의 역사와 제스처를 써넣는다. 예전에 한 전설적인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 1933-2005)은 태도가 형식이 된다고 했지만, 박인성 작가는 사유가 곧 형식이며, 현대미술은 물질적 시(material poetry)라는 전제에서 예술적 서사를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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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2, Yonghak-ro, Suseong-gu, Daegu, Korea